김성민 선생님의 칼럼

 

중국하면

빠질 수 없는 것!

 

바로 입니다!

 

전 사실 맥주를

정말 좋아하는 데요!

 

, 물론 진이나 보드카,

럼주 등도 좋아합니다!

 

(그러고보니 소주 빼곤 다 좋아하..)

 

어쨌든!

저 큰 대륙의 유명한 술,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한 번 같이 보시죠!

 

 

중국은 요리문화에서만큼은 세계최강을 자랑하는데 그에 어우러져 차도 종주국일 뿐 아니라 술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술 문화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세계 3대 명주라 하면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프랑스의 브랜디, 그리고 중국의 마오타이를 꼽는다. 그래서 술 좋아하기로 유명한 한국인들이 중국에 가면 중국 술을 맛보는 것은 필수코스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중국 술은 일반적으로 백주(白酒)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주를 지칭하듯 그리 부르는 것인데 많은 사람이 술이 투명한 색상이라 백주라 부르는 걸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재료에 의한 명칭을 붙이자면 고량주라고 해야 하겠지만, 중국 역사를 통틀어 술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당대의 시선 이백(李白)이다. 시에서 일인자임은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하는 바이지만 술에 있어서 일인자임은 단 한 사람도 의심을 품지 않는다. 그러한 그의 이름을 따서 일반평민들이 누구나 쉽게 접하고 마시는 중국인의 술이라는 뜻으로 백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백주는 지역마다 그 이름이 있는데 그 명칭을 다 알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무리 전산화가 되어도 중국 전역에서 생산되는 술의 종류와 명칭은 집계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많다. 우리나라의 소주가 각 지방별로 상표화된 이름을 가지듯 중국의 매 지역마다 고유명칭을 가진 술이 나오고 그 종류 또한 기백이 넘는 곳이 있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 바이다.

 

 

수도 베이징의 경우, 남편을 여읜 과부가 1년도 채 되지 않아 새 남편을 들이자 마을 사람들은 옛 베이징 방언으로 재가한 여자, 즉 이과두(二鍋頭)라고 불렀고 생계가 어려웠던 그녀는 빚어 팔던 술의 맛이 가히 일품이라 뒤에서는 험담을 해도 그녀의 술을 얻어 마시려면 그녀 앞에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한 이웃 행세를 해야만 했다 한다. 물론 사실은 제조법의 솥 운용법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그러한 이야기에서 연유되어 베이징의 고유 백주를 이과두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산둥 지역의 백주는 이름이 백건(白乾), 중국어로바이깐인데 현지 방언의 마지막 어미 얼()이 첨가되어 보통바이깔로 발음하던 것이 한국에 전해져 지금도 빼갈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통용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중국의 술 들 중에서 1952년 최초로 중국 명주 콘테스트를 거쳐 마오타이를 비롯한 사대 명주를 선출했는데 그 이후 1963, 1979년에는 8대 명주를, 1984년에는 13대 명주를, 1989년에는 17대 명주를 선출한 바 있다. 보통 항간에서는 8대 명주가 통칭되고 있는데 수상경험이 있는 모든 술이 서로가 8대 명주라고 우기는 통에 종류는 많아졌지만, 현재의 순위별로 볼 때 한국인들 누구나가 한 번쯤 들어본 구이저우의 마오타이(茅台), 그리고 동주(董酒), 행화촌의 명주인 펀주(汾酒), 우량이에(五粮液), 역사를 자랑하는 루저우라오치아오(瀘州老窖), 맛으로는 최고라고 하는 지엔난춘(劍南春), 상나라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시펑주(西鳳酒), 안후이 성의 구징꽁(古井貢)등이 현재 8대 명주로 통용되고 있다.

 

 

일본의 통치하에 50년간을 지낸 타이완에서 중국 술과 일본의 청주를 결합하여 만든 죽엽청같은 술도 명주대열에 가끔 끼기도 하나 전통술이 아니라는 개념으로 인하여 8대 명주에는 들지 못했지만 각 술의 제조상마다 자신의 술을 8대 명주에 넣어서 소개함은 어딜 가나 일반화되어버렸다.

 

특히 마오타이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여 국빈주로 이용되는 것은 물론 구이저우 공장의 생산량이 모자라서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베이징 근교에 제2공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동일한 공정을 거쳤는데도 그 술맛이 너무 차이가 나자 재료의 문제로 여기고 모든 재료와 물까지 구이저우에서 공급해 와서 다시 생산해 본 결과 여전히 향미의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이에 학자와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그 원인을 찾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구이저우의 기후 습도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환경을 갖추지 않고서는 동일한 맛을 내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래서 지금도 소위 꾼들은 마오타이만 보면 제조공장을 확인한다. 구이저우의 것인지 베이징의 것인지를. 하지만 그 유명세만큼 가장 가짜가 많은 술이라는 오명도 갖게 되었다.

 

 

중국 술은 일반적으로 그 도수가 높아 독하기로도 이름나 있는데 보통 백주는 30도대와 40도대, 50도대, 60도가 넘는 원장주 등으로 구분되는 것이 많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모두가 두주를 불사하였는데 시선 이백은 한 말의 술로 시 100편을 썼다 하고, 진나라의 시인 도연명도 사서에 단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없다 하였으니 그 주량이 놀랍다. 수호전의 양산박 호걸 중 무송은 일반 술잔도 아닌 밥사발만 한 술잔으로 술 석 잔을 마시면 언덕을 넘지 못한다고 하는 경양강을 18그릇을 마시고 올라가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으니 웬만한 우리네 주당들이 넘보지 못할 주량이었나 보다. 예술적 에너지도 육체적 파워도 술의 힘을 이용했다는 농담도 일반화되었다.

 

 

단지 한국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 그 유명하다는 술들을 다 마셔보고 싶은 욕심이었는지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리기로 이름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10여 년 전이지만 한 중국인 교수로부터 한국인에 대한 평을 들은 바가 아직도 가슴을 찌른다.

 “한국 사람들은 시원시원하고 꾸밈이 없고 기분파며 친근감이 넘쳐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멋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술만 마시면 모두가…….” 라고 고개 저으며 한 말이.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 조선일보>



마오타이..

정말 한 번 마셔보고 싶은데,

선생님이 칼럼에 쓰신 것처럼

가짜가 너무 많아서ㅠㅠ

 

근데 빼갈이

원래 백건이란 술을

방언 섞어 부르다가

빼갈이 된거였군요!!

 

..

이건 또 처음 알았네요 ㅎㅎ

 

술은 참 좋은 물건입니다.

 

하지만 과하면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

 

적당히 즐기는 음주문화를

지킵시다, 여러분!!

 

불금인 오늘,

저는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려합니다

 

모두 즐거운 불금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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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선생님의 칼럼

 

지난 주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녀

를 한 번 알아봤는데요.

 

(사실 전 오늘 주제에 관심은 없으나

미녀를 했음 미남을 해야했기에

어쩔 수 없이.. 궁시렁궁시렁)

 

어쨌든!

궁금하긴 하네요

(억지)

 

대륙의 미남은 어떨지,

한 번 같이 보시죠!

 

 

미인계라는 병법의 예를 보면 하나같이 미모의 여성을 이용한 이야기만 등장한다. 그러면 미녀계라고 하지 않고 왜 미인계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미남계란 통하지 않는 술수가 되는 것일까. 희대의 미녀 스파이는 자주 등장해도 미남의 전형이라고 하는 루돌프 발렌티노 같은 남성의 전략적 이용 실례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제임스 본드를 제외하면 말이다. 아마도 남성의 용모가 절색이 되기에는 부족해서일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고구려의 낙랑국 침공에 왜 자명고는 울리지 않았을까? 어떻게 일국의 공주가 스스로 자국의 군사 레이더망을 파괴하는 행위까지 저지르게 되었는지. 훤칠하게 잘생긴 호동이라는 남정네의 제비행각(?)에 나라 하나가 망한 예다. 이쯤 되면 마타 하리는 애교급이 아닐까.

 

미모를 이용한 전략에서는 항상 미녀의 경우가 예가 많은 것일 뿐 효과 면에서는 미남을 이용한 결과물이 더 큰 효과를 가져왔다. 선화 공주를 꾀어 달아난 서동이 미남이었는지는 기록이 확실치 않지만, 유랑자의 신분으로 일국의 공주까지 얻지 않았는가. 분단 시절 구 동독의 첩보기관에서 시행한 이른바로미오 작전(Operation Romeo)’ 이 처음 건의되었을 때 황당하고 유치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했다. 멋지고 건장한 남성 스파이들을 매너 넘치는 훈남으로 교육해 서독의 각 국가기관에 근무하는 여비서들에게 접근시켜 정보를 빼낸다는 만화 같은 작전이었는데, 웬걸 몇 년도 걸리지 않아 혁혁한 성과를 올린 성공적 작전이 되어 지금도 첩보 역사에서 자주 거론된다.

 

중국의 고대 역사에서 사대미녀는 잘 알려져 있지만 사대미남은 금시초문이라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용모의 뛰어남이 사서에 기록된 남성 캐릭터도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겠다. 역사 기록상 미남으로 손꼽히는 인물로는 반안(潘安)、송옥(宋玉)、조식(曹植)、심약(沈約)、난릉왕(蘭陵王)、위개(衛玠),주유(周瑜)、손책(孫策)、용양군(龍陽君) 등 그 수가 미녀들 못지않게 많은데, 그중에서 사대미남의 타이틀을 획득한 주인공은 반안、 송옥、 난릉왕、 위개 네 사람이다.

 

 

가장 선두는 반안 인데, 서진 시대의 문학가인 그는 한번 외출을 하면 그를 따라다니는 여성들이 주는 과일과 꽃을 수레에 가득 싣고 돌아온다 하여척과영거(擲果盈車)” 라는 말을 만들어 낸 사람이다. 그래서 반안은 미남의 대명사가 되어 잘생긴 남자를 표현할 때는 항상모사반안(貌似潘安)” 용모가 마치 반안과도 같구나.”라고 했었다. 그런 뛰어난 용모의 반안이었지만 결코 얼굴값을 한답시고 풍류를 즐기지는 않았다. 부인을 지극히 사랑한 자상한 남편으로 소문났고, 부인이 죽은 후에도 애도의 문장을 남기는 등 인품에서도 칭찬을 받았다. 물론 반역죄로 처형은 됐지만...

 

 

송옥은 굴원의 제자로 알려진 초사의 명인으로 특히 그의 작품 <구변(九辨)> 은 굴원의 <이소> 와 함께 이대 초사 걸작으로 칭해진다.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서아름답기가 송옥과도 같구나!” 라는미여송옥(美如宋玉)’ 의 문구를 볼 수 있고, 그는 용모에 재기(才氣)를 겸비한 인물로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난릉왕은 가장 극적인 인물로 그 출신이 베일에 가려있고, ‘북제의 전신(北齊戰神)’ 이라는 별호가 붙을 만큼 뛰어난 명장인데, ‘가면 속의 비정한 미남자로 통한다. 너무나 섬세한 마치 여인과 같은 용모로 인하여 적이 겁을 먹지 않는다 하여 항상 무시무시한 투구를 쓰고 전쟁에 임했기 때문이다. 그의 용모와 가면에 얽힌 이야기는 여러 지방극에 영향을 주었고 심지어는 한국의 탈춤에도 그 기원이 얽혀 있다고 전해진다.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는데, 난릉왕의 역할을 맡을 배우를 두고 무척이나 고심했다는 제작비화도 전해질 정도다.

 

 

마지막은 진나라의 현학자 집안의 선비 출신인 위개인데 그는 마치 보석이 주위를 감싸고 빛나는 것과 같다는 평을 들은 절세미남이었다. 외출을 하면 그의 용모를 보려고 몰린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결국 그를 구경하려고 둘러싼 사람들에게 시달려 27세의 나이에 요절하고만 비운의 미남자이다. 그래서 후세사람들이간살위개(看殺衛玠)’ ‘구경하느라 위개를 죽였다.’ 고 말하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뛰어난 용모와 지략, 학문에 예술적 소양도 뛰어났지만, 제갈량이라는 인물로 인하여 이인자로 여겨지며 그 용모에 빛이 바래고만 주유, 용모에 문학적 천재성을 띄었지만, 왕위 다툼에 묻혀버린 조식 등 소위 재주 많은 꽃미남들은 절세미녀만큼이나 많았다. 대부분의 최후가 미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다지 아름다운 바가 아니라 미인박명이란 말이 나왔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니 많이 부럽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 조선일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맨 마지막에

김쌤의 말씀.

미인박명이란 말이 나왔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니 많이 부럽다.

 

에서 정말 진심이 뚜욱.. 뚜욱..

묻어나오네요 ㅋㅋㅋㅋㅋㅋ

 

하지만 공감 가구요ㅠ^

 

저도 어디가서

못생겼다는 소리는 안듣는데,

 

왠지 키 크고,

정말 남자가 봐도 멋있는 남자가 있어요..

 

여자가 봐도 이쁜 여자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뭐,

그래도 전 자신있으니까요!!

 

후훗.

뇌섹남(?)이라고 나름

밀어붙이려 합니다(!!)

 

..

제정신이 아니군요.

 

암튼

다음주에 뵙도록 합지요.

 

불금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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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선생님의 칼럼

 

..

두말 필요없이

진짜 궁금하네요 ㅎㅎ

 

대륙의 미녀라니!!

정말 흥미가 돋는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

솔로라서.

가 아닙니다.

 

그럼

한 번 같이 보시죠!

 

 

중국 역사 속에는 수많은 미녀가 등장한다. 사서에 기록될 정도의 미모를 지녔던 인물로만 간단히 세어 봐도 백 단위는 가볍게 넘어간다. 그러한 미녀들의 미모에 대한 칭송은 현재에까지 이어지지만,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 역할은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의 캐스트들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미인을 일컫는 대표 성어로 경국경성(傾國傾城), 즉 나라도 성도 무너뜨리는 미색이라고 표현했을까. 미녀들이 등장하며 좋은 일보다는 나쁜 결과가 많았다는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미녀는 왕조의 멸망에 즈음하여 등장하면서 왕조의 종지부를 찍는데 크게 한몫을 해왔다. 최초의 왕조 하나라를 멸망케 한 말희(末喜), 상나라를 무너뜨린 달기(妲己), 서주 시대를 끝내고 춘추전국의 혼란기를 스타트 시킨 포사(褒姒) 등등.

그러나 역사는 역사고 오로지 관심은 미모였던지, 누구의 미색이 더 뛰어난가 하는 논란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많은 미인들 중에서 중국인이 손꼽는 만년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최고의 미인을 들라면, 춘추 말기 오월대전에서 오왕 부차로 하여금 미색에 빠지게 하여 월나라의 침공을 도운 서시(西施). 지금도 중국에서는제 눈의 안경이라는 뜻의 속담으로연인의 눈에는 서시만 보인다.’ 라는 말을 쓸 정도다.

 

 

 그 뒤를 이어 주지육림의 말희와 달기, 웃음 한 번에 천금을 들인 포사, 초상화 한 장 때문에 오랑캐 땅으로 팔려간 왕소군(王昭君), 당나라의 최후에 불을 붙인 양귀비로 알려진 양옥환(楊玉環), 전설 속의 인물로 불사약을 먹고 달로 간 항아라고도 불리는 상아(嫦娥),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었다는 조비연(趙飛燕), 실존인물이라고 하기에는 의심스럽고, 후대 사람들이 이야기 속에서 가상으로 만든 인물로 추정되는 후한 말기 동탁을 양아들 여포에게 죽게 만든 초선(貂蟬) 등이 여전히 최고 미녀의 자리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항상 베스트를 뽑으면 네 가지를 자주 거론한다. 그래서 사대기서, 사대 자객, 사대신화, 사대천왕이라는 말들이 많은데, 중국 최고의 미녀라고 일컫는 소위 사대미녀 네 자리를 차지한 인물로는 서시, 왕소군, 초선, 양옥환 이다. 이들 네 사람은 매란국죽의 사군자처럼 화폭에 옮겨지는 단골들로 미인을 나타내는 대표어휘 네 가지를 하나씩 꿰차고 있다.

서시가 냇가에서 수건을 씻는 모습에 물고기가 그 미모를 보고 놀라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았다 하여침어(浸魚)’.

변경을 나서 흉노 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의 비파소리에 기러기들이 날갯짓을 멈추고 떨어졌다 해서낙안(落雁)’.

초선이 달을 쳐다보면 달이 그 미모에 움츠려져 구름 뒤로 숨었다 하여폐월(閉月)’.

술에 취한 양옥환이 화원에서 꽃을 만지면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말아 올렸다는 이야기의수화(羞花)’.

 

 

그래서 경국경성 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그 미모에 대한 최고의 찬사어로침어낙안 폐월수화가 절세가인을 대표하는 말이 된 것이다. 오천 년 역사 속의 챔피언급 미모인 침어낙안 폐월수화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 인지상정인데 타임머신이 있지 않고서는 그 자태를 볼 수가 없으니 안타깝고, 초선이라는 가공의 인물로 포함된 것으로 볼 때 상상으로 만족해야 함이 옳을 듯하다. 역사 속 수많은 미인들의 기록을 볼 때 지금도 그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 분명하지 않겠나. 그래도 해외토픽에서조차 하늘을 날던 새가 미인을 보고 떨어졌다는 말은 안 들리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 조선일보>

 


근데 솔직히

중국은 과장을 조금

심하게 해서요..

 

기러기가 사람 얼굴을 보고

떨어졌다는 거나

 

달이 부끄러워서

숨었다는 거나..

 

믿을 수는 없지만

(실제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미인은 아니었을 듯..)

 

그만큼 이쁘고 재주도 많은

아름다운 사람,

이라는 의미였겠죠?

 

벚꽃도 피는데,

제 님은 어디에 있나~

 

(왜 전 여기서

서울에 있나~ 제주에 있나~

부산에~~ 있나~~

하는 노래가 생각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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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선생님의 칼럼

 

여러분은 악기,

뭐 다루는 거 있나요?

 

..

솔직히..

음치에 박치라

 

…..

 

근데 저희 김성민 선생님은

중국 음악,

특히 악기라면 정말

환장을 할 정도로(?)

좋아하시는데요!

 

중국 악기와 사랑에 빠진 남자,

김성민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중국 악기!!

 

그 중 특히 얼후에 대해

한 번 같이 알아볼까요?

 

 

‘라이~ 라이~ 호궁이 운다….’

그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국음악의 특색이 살아 있는 음색과 선율의 대표로 이 호궁이란 악기가 가장 큰 인상을 남겼나 보다. 사실 호궁은 호금(胡琴)이란 악기의 별칭이 전해진 것인데, 우리나라의 해금과 원류가 같은 찰현악기이다. () 라는 명칭은 한족(漢族)이 아닌 소수민족이나 외래족을 지칭하는 말이기에 그 시발점은 중국이 아니었다. 몽골 대초원의 유목민들이 사용하던 북방의 악기인데, 모린호르(마두금)과 함께 호치르 라고 불린 초원 악기로 칭기즈칸의 대제국을 따라 세계 곳곳으로 퍼져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모린호르는 서양 음악에 영향을 주어 첼로의 탄생을 도왔다고 하며, 아시아권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호치르와 같은 형태의 악기를 볼 수가 있다.

 

당 나라 시기에 그 악기에 대한 기록이 보이기 시작하고 송말 원초에 그 형태가 정립되어 해금(奚琴) 이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우리나라에 전해진 해금은 아직까지도 그 명칭과 함께 원형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중국에서는 여러 차례의 개량을 통해 호금이라는 이름하에 여러 가지 형태로 나뉘었다. 저음부의 중호, 고음부의 고호, 경극반주용의 경호, 경이호, 이천금 등이 있는데, 그중 대표격이 되는 중음부의 악기를 지금은 이호(二胡), 중국어로 얼후라고 부른다.

 

중국의 바이올린이라는 소개와 함께 이미 세계 전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얼후라는 외래 악기가 중국을 대표하게 된 것에는 두 사람의 역할이 컸다. 리우티엔화(劉天華)라는 근대 음악가가 서양음악의 음계와 형태를 가져와 1900년대에 들어 명주실을 꼬아 만든 현을 쇠줄로 바꾸고 지금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얼후 이야기를 하면 빠질 수 없는 민간 예술가 화옌쥔(華彦鈞)이 있다. 화엔쥔은 그 이름보다 예명이라 할 수 있는 아빙(阿炳)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도학자의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으나 20대에 병으로 인해 실명한 시각장애인 음악가이다. 그의 대표작인 이천영월(二泉映月)은 지금도 얼후의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곡이며 그 곡을 연주하기 위한 이천이호(二泉二胡), 일명 이천금(二泉琴)이란 악기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단 한 곡의 음악을 위한 악기가 따로 존재함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일일 것이다. 리우티엔화의 개량과 정립에 아빙의 명곡전파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 얼후를 음악교육의 주인공으로 만든 정책에 힘입어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통악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얼후는 형태에 따라 북방식과 남방식이 있으며 밀도가 높은 홍목이나 오목, 단목등으로 만드는데, 흑단 혈단 자단 등이 고급재료이며 옛 홍목 고가구를 깎아 만든 노홍목 얼후를 최고로 친다. 중국의 전통악기 중 가장 인간의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와 흡사한 음색을 지닌 것으로 소개되는데 그 가죽은 망피(아나콘다나 왕구렁이의 가죽)를 사용한 것이 상품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그 음색의 애절한 매력 때문인지 엔카 반주 악기로 점차 인기를 얻고 있고, 우리나라를 방문해 공연을 하기도 했던 여자십이악방의 연주곡이 오리콘 차트에서 연속 1위 행진을 하며 대중화된 인기 악기니코가 되었다. 그러나 대중화에 있어서 야생동물보호법으로 인하여 뱀 가죽이 문제가 되어 사슴 가죽을 이용한 일본식 얼후를 만들고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얼후의 음색에 반한 사람들이 모여 동호회 활동 등을 통하여 애호가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가요 곡에서도 반주 악기로 사용되고, 우리 국악인이 작곡한 얼후 협주곡이 있을 정도로 이미 상당한 지명도를 가진 악기가 되었다.

 

얼후를 배우고 연주하면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왜 하필 중국 악기를 배우냐고.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에게 왜 하필 이탈리아(독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악기를 배우냐는 질문은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주위에 오카리나를 부는 사람이 많은데, 그게 어느 나라 악기냐고 물어보면 모두 꿀을 먹었는지 대답을 못 한다. 음악에 국경이 어디 있으며 음악은 세계인이 소통할 수 있는 공용어가 아닌가. 인도의 시타르를 배워도,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을 배워도, 러시아의 바랄라이카를 배워도, 인디언 플룻을 배워도 세계 어디서나 소통이 가능하다. 문화의 주요 부분을 하나 쥐고 나아가 이해하면 더 깊은 교류가 가능하니 악기 또한 교류와 세계화의 멋진 도구가 되지 않을까. 차 한잔을 마셔도, 커피를 마셔도, 위스키나 막걸리를 마셔도 이천영월이라는 곡 하나가 멋진 분위기를 연출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 조선일보>

 


실은 김성민 선생님의

오프라인 강좌가 다음주면 끝인데요.

 

거의 매주마다

갖고 오시던 악기가

 

바로 이 얼후거든요

 

김성민 선생님의 얼후사랑!

칼럼에서도 뚝뚝 묻어나지 않나요?!ㅎㅎ

 

문화를 알아야

그 나라를 진정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데요!

 

문학이나 역사 뿐만 아니라

음악도 같이 알아가면서

중국에 대해 이해를 하다보면

 

어느샌가 중국 소식통이

되어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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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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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선생님의 칼럼

 

우리 나라의

문화나 역사를 말할 때

한자(漢字)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

형성할 정도로

한자는 아시아 문명에

정말 큰 영향을 끼쳤는데요!

 

이에 대해 쓴 김성민 선생님의

칼럼을 한 번 같이 볼까요?

 

 

동양의 한··일 삼국은 모두 공식적으로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다. 이 한자의 종주국은 중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사용되는 삼국의 한자는 그 형태가 달라졌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한자의 간략화 작업을 거쳐 이전과는 다른 한자를 사용하고 있고, 가장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한자인데, 전통을 깨지 않으려는 민족성과 실제 사용의 빈도가 삼국 중 가장 낮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자는 복잡한 표의문자이기에 간략화 작업은 이미 고대로부터 있어왔다. 고대의 전서가 진대에 예서로 간략화되었는데, 시황제의 만리장성 축조에 동원된 노역군과 죄수들을 통솔하던 한 관리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수많은 사람의 인명을 복잡하기 그지없는 전서로 기록하려니 힘도 들지만, 시간적 낭비에 재촉되는 완공 압박에 견디다 못해 전서를 간략화시켜 쓰기 시작한 것이 예서가 되었다. 그래서 노예의 예자를 따 온 것인데, 글씨체의 우아함과는 다르게 예쁜 이름을 얻지 못한 연유다. 이후 해서 또한 전서의 간략화로 보며 이를 빠르게 속기하기 위한 행서와 초서가 등장하였듯 한자의 간략화 시도는 당나라 때부터 이미 기록된 바가 보인다.

 

현대에 와서 어려운 한자로 인해서인지 문맹률이 높았던 중국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1935년 처음 한자를 간략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국민당의 반대로 무산되는 듯하였으나 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간략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여 1956년 기존의 정자를 복잡하고 번거롭다는 의미의 번체자라고 지칭하고 이를 간략화한 간화자인 간체자를 제정하여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한자의 숫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91,251자까지 집계된 바가 있는데, 이 많은 한자를 다 익히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고 일상생활에서 실제 사용되는 한자는 2000여 자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에 대규모의 간략화를 시도하여 통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현재 중국대륙의 모든 서적이나 매체는 이 간체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자에 능숙한 한국인이라도 기존의 한자지식으로 읽어내기가 어려운 글자들이 상당수다.

 

일본 또한 기존에도 이러한 시도가 계속 있었지만 태평양 전쟁을 거치며 실용주의의 대두와 함께 상당수의 한자를 자기네 식으로 간략화시켰는데, 중국의 그것에 비하면 상당히 소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의 형태를 바꾼 것은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사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의 간략화 된 한자를 상당수 혼용하고 있는데, 약자, 속자, 통속자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글자들의 상당수가 그러하다.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나뉜 한자의 형태가 일본식 한자는 일본에서, 원래의 정자는 한국, 타이완, 홍콩, 동남아 화교권에서, 중국식 간체자는 중국대륙과 싱가포르에서 사용되고 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국인에게 한국식으로 한자를 써서 보이면 젊은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어떻게 젊은 사람이 옛 고자(古字)를 다 아느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대중매체의 발달이 크게 한몫하여 상호 간에 읽어내는 데는 어느 정도 통용이 되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중국어를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중국의 간체자를 보면 여전히 신기한 글자일 뿐이다.

 


 

각자 나름의 세 가지 한자 형태가 존재함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산의 발달로 전산 언어에 대한 통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일 삼국의 대책회의도 있었지만 별 성과 없이 필요성만을 확인하는 자리로 끝이 났다. 공식적인 한자의 사용도가 삼국 중 가장 낮은 우리나라의 원형태가 전산 통용자에서 불리한 입장이지 않을까 걱정은 되는데, 현대사회에서 국제화 인력이 되려면 세 가지를 다 익혀야 하는 고충이 생기고 만 것일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 조선일보>

 

간체자, 약자 등의 구분은

중국과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또 간략하게 쓴 것도

중국과 일본에 따라 다르..

 

….

뭐가 이리 복잡하노!!

 

그냥 우리나라에서 쓰는

정통 한문이면

중국과 일본에서도 통하겠네요?!

 

..

고어(古語)라고 해서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겠지만..

 

아무튼 저러한 이유로

중국어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우리 김성민 쌤과 함께라면

중국어,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거!!

 

다들 아시죠?ㅎㅎ

 

그럼 같이 중국어를 시작해볼까요?

전 이만 공부하러..

안녕~!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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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선생님의 칼럼

 

..

이거 정말

완전 대박 공감..

 

중국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공감이 갈 이야기인데요!

 

한 번 자세히 살펴볼까요?

 

 

중국에 가서 중국어는 잘 몰라도 한자는 잘 안다며 식당에서만두(饅頭)’ 란 한자를 찾아내고 시킨 사람. 종업원이 얼마나 드릴까요? 라는 반응을 보이는듯하여 손가락을 두 개 펴고 20개를 달라고 하자 한참 뒤 가져온 만두는 달랑 두 개밖에 되지 않았다. 항변을 해야함이 정상이나 그럴 엄두를 못 내는 이유가 있었으니 우리가 평상시 보고 먹던 만두가 아니라 만두 두 개를 합치니 사람 얼굴 크기가 되는데 어찌 주문이 잘 못되었다고 다시 18개를 더 달라고 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런데 설상가상 이 만두란 놈을 아무리 베어 먹어도 안에 소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어쩌랴. 급기야 반으로 갈라보니 그래도 보이는 것이라곤 하얀 밀가루로 만든 빵과 같은 구조라 혹시 주방에서 실수로 소를 넣지 않은 불량품인가도 생각해 보지만 그것이 바로 만두다.

 

 

우리나라에서도 만두는 이미 우리 음식의 하나로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상식(常食)하는 음식이 되었다. 이 만두와 관련된 음식이 현재 중국에서는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우리와는 명칭이 상당히 다른 것이 문제다.

 

원래 만두란 삼국시대 제갈량의 남만 정벌 때 맹획을 칠종칠금했던 그 당시 촉한의 군대가 노수(瀘水)를 건너가려 하자 강물에 파도가 일며 귀곡성이 울리니, 원혼들을 달래고자 제사를 지내는데 산 사람의 머리를 바칠 수 없어 사람의 머리 모양으로 만든 음식이다. 안에 고기를 다져 넣고 둥글게 피를 말아 위에 상투처럼 머리 모양을 만든 이 만두가 송나라 때에 북방 사람들이 쓰던 포자(包子)로 이름이 변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원래 제갈량이 만든 만두에 소를 넣지 않고 간단히 빵처럼 쪄서 만든 것을 백만두(白饅頭)라고 하여 식사대용이나 건량으로 사용하던 것을 지금은 만두라고 부르니 원래의 만두는 포자가 되고 엉뚱한 것이 만두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고대로부터 중국의 북방에서는 새해가 되면 먹는 명절음식으로 중국 동한 시대의 의성 장중경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교자(餃子) 라는 것이 있는데, 이 역시 고기 등을 다져 소를 만들고 우리네 송편처럼 반달 형태로 피를 싸서 먹는 음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새해 음식이라는 점. 형태의 유사성. 북방의 전래음식이라는 점 등이 우리 민족과의 연관성을 추리해 보기도 한다. 이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만두라고 부르니 음식 이름 하나가 심히 혼란스럽게 되어 버렸다.

 

 

정리해 보자면,

찐빵의 형태로 안에 소가 없이 크게 만들어 식사대용이나 건량으로 사용하고 제사에 올리는 것을 만두(중국어로 만터우)

제갈량이 만든 원형에 가까운 둥근 사람 머리 모양의 만두를 포자(중국어로 빠오즈)

우리가 흔히 보는 반달 형태의 만두를 교자(중국어로 쟈오즈) 라고 부른다.

 

만터우의 경우는 쉽게 구별이 되지만 빠오즈와 쟈오즈가 뭐가 다르냐고 의문을 가지기 쉬운데 첫째는 원형과 반달형의 형태 차이가 있고, 빠오즈는 쪄서 먹기만 하는 음식이지만 쟈오즈는 쪄 먹어도, 구워 먹어도, 물에 넣어 삶아도, 국을 해먹어도 된다. 그리고 기술적 차이로는 피가 다른데, 쟈오즈의 피는 얇고 갈분을 주로 하여 익혀도 부풀지 않고, 빠오즈의 피는 밀가루 성분이 많으며 익히면 두껍게 부푸는 것이 요리상 구분법이다.

 

비록 전설이긴 하지만 1800여 년 전에 제갈량이 만들었다는 음식을 그 명칭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 전통 고수에는 원조국가가 놀랄 일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 조선일보>

 


만두, 포자, 교자..

이 구분은 알고 있었는데,

 

그 유래까진 처음 알았네요!

 

근데..

듣고보니 포자 모양이

사람 얼굴처럼 보이네요 또 ㅎㅎ

 

마치 상투를 튼

옛날 사람 얼굴 같은?!

 

이래서 문화를 알고,

그 유래를 알아야

더욱 그 나라가 잘 보이는 것 같아요!

 

물론 언어 공부도 더 재밌어 지고요!!

 

무작정 만터우, 빠오즈, 쟈오즈

이렇게 외우라고 하면

정말 헷갈리잖아요!ㅎㅎ

 

오늘 저 3개는

절대 잊지 말기로 해요!!

 

꼭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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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선생님의 칼럼

 

제목만 보고

순간 엥??

하고 말했었는데요.

 

글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 이해가 되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아래 글을 한 번 읽어보세요!

 

 

그 옛날 70년대, 무협소설에 빠져 있을 무렵,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부상을 당하고 위기에 봉착하면 항상 몸을 피하는 곳이 낡은 묘라는 곳이다. 그 시절 상식으로 묘란 무덤으로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는데, 아무리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라 하더라도 명색이 주인공으로 어찌 무덤 속에 들어가 몸을 숨긴다는 말인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기행으로만 생각되었다.

 

타이완을 여행하고 온 사람들이 길거리 곳곳에 자그마한 절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신기했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것은 절이 아니라 바로 무협지 속의 주인공 협객들이 위기를 피하던 단골집인 묘라는 일종의 사당이다.

 

특정 종교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그 옛날 동네 어귀마다 자리 잡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던 칠성당이나 서낭당 같은 사당의 일종으로 조상신을 비롯하여 온갖 군신들이 함께 모셔져 있는 곳이다. 불가의 여래보살로부터 삼국시대의 무장 관운장, 송나라의 충장 악비, 그리고 공자, 서왕모, 한나라말의 명의 화타 등 분야를 따지지 않고 총망라된 성인이나 명인들의 집합 사당 형태를 이룬다.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거나 억울한 일이 있어도, 성공을 기원할 때도 어김없이 먀오를 찾아 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원하는 바의 답을 신에게 묻는다. 딱히 염원 거리가 없다 하더라도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먀오를 찾아 조상신들에게 하루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빠이빠이(拜拜)를 함이 일과의 시작이 된다. 그 순서로는 먼저 향을 사서 (좋은 향을 준비해 가는 경우도 많다) 전체 군신들에게 절을 하고 향을 올리고 개인적으로 찾는 신을 다시 찾아 향을 올리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빈다.

 

 

그 소원에 대한 신의 답을 듣고 싶으면 쟈오뻬이(筊杯)라고 불리는 반달형의 나무조각 두 개를 던져 답을 듣는데, 윷놀이에 사용되는 윷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두 개의 쟈오뻬이가 음양으로 하나씩 나오면 성배(聖杯)라고 하여 소원이 이루어짐을 말하는 것이고, 평면이 두 개 나오면 소배(笑杯)라고 하여 간단히 말하면 조금 더 정성을 기울여 다시 점쳐보라는 말이다. 윷의 모가 나오듯 두 개가 다 볼록한 면이 나오면 내 소원에 대한 신의 거부로 여기는데 그렇다고 낙심할소냐 신이 OK라는 답을 줄 때까지 그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런 다음 치엔통(籤筒)에 가서 대나무로 만든 괘를 하나 뽑고 거기에 적혀진 번호대로 풀이를 보며 빠이선(拜神)의 과정을 끝내는 것이다.

 

 

어떠한 특정 종교의 의식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하기가 힘든데 먀오 안에 모셔진 수많은 불가의 부처상들을 보고 불가의 의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다분히 도교적 의식에 해당된다. 이렇듯 민중의 생활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문화센터이다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찰처럼 심산유곡이나 인적 없는 산상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생활의 편의상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는 것이 이 먀오다. 자연적으로 먀오의 앞은 온갖 사람들과 장사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고 중심가가 아닌 중심가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맛있는 먹거리를 먹으려면 먀오제(廟街)로 가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굳이 먀오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가정마다 조상의 위패를 모셔두고 향을 올리는 코너가 있는 가정이 많은데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위패 앞의 향로에 향을 올리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된다. 한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소위 그 위패를 모신 코너를 볼 수가 있었는데 조상의 위패 뒤로 돈을 벌어다 준다는 재신(財神)의 그림과 삼국연의의 세 주인공 유현덕, 관운장, 장익덕의 화상도 붙여져 있었고 더더욱 놀라운 것은 자그마한 석가모니의 불상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도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영문을 묻자 태자라는 신분을 버리고 고행의 길에 들어서 득도를 한 부다는 성인이요, 내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며 목숨까지 내어준 예수 또한 성인이라 조상들과 함께 기도를 올린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부다와 예수의 동석 신단이 어찌나 그리도 신기했던지.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 옆에 붙어있던 액션 스타 브루스 리의 사진에 더 관심이 갔지만 말이다.

 

 

한국인은 신상명세를 물어볼 때 종교는 무엇인가요? 라는 말을 심심찮게 하는데 중국 사람들에게 한국에서처럼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대답에 너무나 곤혹함이 드러난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다는 대답으로 필자가 가장 많이 들은 것은아마도 도교가 아닐까요?” 라는 말이다. 도교라는 답보다 그 앞에 붙은 아마도 라는 말로 대답이 대신 되는 것 같았다. 모든 성인이 성인으로 추앙받고 상호 간의 갈등이 없는 이러한 형태의 중국인들의 종교 심리를 종교학자들은 만신교(萬神敎)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종교백화점이지만 항상 시끄럽기 그지없는 한국사회에서는 자숙해야 할 부분도 있지는 않을까

 

교류가 빈번해진 한중관계로 양국 국민 간의 접촉기회는 끊임없이 많아지고 지금도 끊임없이 한국인들은 별 생각 없이니신 선머 쟈오?” 라고 상대의 종교를 물어보고 어디 한 두 번 당했느냐는 투의 표정으로 또 시작이다 라며 관심 없다는 대답으로수이쟈오(睡覺-잠자요 잠)” 이라는 대답을 하는 것을 볼 때 한국 사람들이 그네들에게 종교질문으로 참 많은 고문을 하고 있나 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 조선일보>


 


ㅎㅎㅎㅎ

우리나라로써는

아니,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중국만의

독특한 문화인거죠?

 

저도 사실 그냥 조상신 모셔놓은 사당,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보단 폭넓은 모든 신()

모셔놓는 만신당 같은 곳이네요!


 


전 딱히 종교는 없어서

저런 사당? 같은 곳에

부처님이든 예수님이든 누구든

모셔놓는다는 게 거부감은 없는데요!

 

종교를 가진 분들은 조금

불쾌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듯이

중국에는 중국만의 문화가 있는 거겠죠?

 

그러니 딴지는 노노하고,

그냥 그 나라의 문화라고

우리 모두 이해하도록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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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선생님의 칼럼

 

요즘 외로워서 그런지..

러브 스토리가 굉장히 땡기네요ㅠ

 

우리 김성민 선생님이

중국에도 로미오와 줄리엣 같이

정말 오래되고 사랑받는

러브스토리가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 한 번 같이 살펴볼까요?!

 

나라마다 오랫동안 구전되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러브스토리가 있다. 이탈리아의 로미오와 줄리엣, 우리나라의 이몽룡과 성춘향처럼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는 세계인 누구에게나 호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중국은 넓은 대륙을 자랑하듯 수많은 러브스토리가 전해지는데 우리도 잘 아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 항주 서호를 무대로 펼쳐지는 허선과 천 년 백사 백소정의 이야기를 다룬 백사전, 남편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 맹강녀의 이야기, 그리고 중국인 누구나가 제일로 손꼽는 양산백과 축영대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있다.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臺)의 사랑 이야기를 중국인들은 줄여서 양축(梁祝)고사라고 하는데 이 양축은 무형문화재로 등록될 만큼 그 인기와 매력을 자랑한다.

오래전부터 민간설화로 구전되어오던 이야기로 당나라 때 <십도사번지(十道四蕃志)>를 시작으로 여러 서적에 그 기재가 보이는데 지금은 그 내용과 무대도 여러 가지 판본으로 나뉘어 여남판본, 항주판본, 미산판본, 제성판본 등... 유명한 판본만도 7가지 이상이 전해진다.

 

 

중국의 서진 시대 상우현에 학문에 뜻을 둔 축영대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월주에 있는 한 유명한 스승을 찾아 수학을 하려 하였다. 하지만 아녀자에게 수학의 기회를 주지 않았던 그 시절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장을 하여 사내 행세를 한다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수학의 길로 떠나게 되는데 가는 여정길에서 동창이 될 선비 양산백을 만나고 몇 달에 걸친 여정에서 영대는 산백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월주에 도착한 두 사람은 동문으로 생활을 하게 되고 여러 차례에 걸친 아녀자의 신분이 들통 날 위기를 모면해가며 공부하는 3년 동안 영대의 마음은 이미 산백을 사랑하게 된다.

 

3년 후 급히 귀향하라는 집의 전갈을 받고 떠나는 영대를 귀향길 중간까지 산백이 전송을 하게 되는데 그 기간 내내 영대는 한 쌍의 꾀꼬리, 물속에서 쌍쌍이 노니는 잉어들을 자신들에 비유하며 계속되는 암시를 주지만 영대가 여자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산백은 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헤어질 무렵이 다가오자 급해진 영대는 자신과 닮은 여동생과 혼인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하게 되고, 이에 흔쾌히 승낙하는 산백과 영대 자신이 여동생을 대신하여 사당에서 함께 향을 피우고 혼약을 맺는 절을 올리는데 한사람밖에 모르는 비밀 혼약이 성사되는 순간이다.

 

중간에서 헤어진 두 사람은 다시 몇 달이 흐른 후 서로의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고 학당으로 돌아온 산백에게 스승의 부인인 사모는 영대가 사실은 여자임을 밝히고 어서 축가로 떠나도록 종용한다.

 

짐을 풀지도 못하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 축가로 가는 길에 여러 차례에 걸쳐 영대가 암시를 했던 바를 뒤늦게 깨달은 산백은 스스로를 멍청한 소라고 자책하며 어렵사리 축가에 당도한다.

 

여인의 복장을 한 영대와 재회한 산백은 기쁘기 그지없었지만, 축가에서 영대를 마씨가문의 자손과 정략결혼을 시키기 위하여 귀향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로 헤어진 그는 그 충격으로 병을 얻게 되며 결국 죽고 만다.

 

출가하는 날, 영대를 태운 꽃가마는 마가로 떠나는 길에 산백이 묻힌 묘가 있는 남산을 지나게 되고, 영대는 행렬을 잠시 쉬게 한 뒤 가마 속에서 상복으로 갈아입고 산백의 무덤 앞에서 남편을 잃은 부인의 곡을 한다. 그때 천지가 진동하고 폭풍이 몰아치며 산백의 무덤이 갈라져 영대는 그 무덤 속으로 뛰어들고 무덤은 다시 닫혀버리고 만다.

 

안정을 되찾은 후 시종들이 산백의 무덤을 살펴보니 아가씨의 옷자락 끝만 보이는지라 그것을 잡아당기니 한 쌍의 나비로 변해 하늘로 날아갔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민간설화로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남방지역에서는 월극으로, 서쪽 내륙에서는 천극으로 공연이 되어왔고, 중국의 전통 그림자극인 피잉시(皮影戱)로도 전해졌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연극, 영화, 드라마, 무대극, 무용, 애니메이션,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르로 소개되고 있다.

 

 

1962년 이한상 감독은 황매희극의 스타일로 뮤지컬식 영화를 만들었는데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감동적이며, 영화 전반에 걸쳐 노래로 이루어진 황매희곡들은 사람들에게 널리 애창되고 있다.

 

1959년 작곡된 바이올린 협주곡 양축은 중국에서 유사 이래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 곡으로 인정받으며 거의 모든 악기로 즐겨 연주되는 명곡이다. 색소폰 연주가 케니. G 도 그 곡에 매료되어 독주를 한 바가 있다.

 

 

여러 판본이 전해지는 관계로 중국의 각 지역마다 양축의 본고장이 자기 마을이라며 앞다투어 기념지를 만들고 행사를 하는데 양축기념 우표의 발매를 두고 지역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오간 적도 있으며 심지어는 양축이라는 술도 만들어 상술에 이용하고 있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세계를 휩쓸자 이에 대항할 중국전통의 애니메이션으로 양축이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에서는 그 인지도가 약해서인지 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사실 이 양축의 이야기에 한국은 오래전부터 그 영향을 받았었고 조선 시대에는 한국식으로 쓰인 작자 미상의 양산백전이라는 소설도 있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똑같지만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이 너무나 가슴 아팠는지 그 뒷이야기를 멋지게 꾸며놓았다. 한 쌍의 나비로 변해 승천한 두 사람의 사랑에 옥황상제가 감동하여 그들을 환생케 하고 부부로 생활하게 되는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양산백이 큰 공을 세우며 영웅이 되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나라마다의 문화유적지나 문물들은 외국인들에게 큰 매력임이 당연하겠지만 이러한 무형의 설화 또한 그에 못지않은 위력을 자랑하는, IS가 아무리 망치를 휘둘러도 물질적인 파괴가 불가능한 멋진 문화재가 아닐까.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러브스토리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 조선일보>


 

근데 사실

요즘은 러브스토리도 많고

자극적인 이야기도 많아서

 

저 이야기가 그리도 인기가 많나??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요.

 

잘 생각해보면

그 옛날에는 이런 사랑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더욱 적을 테니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당대 최고의 인기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ㅎㅎ

 

그렇게 생각하니

그 사람들의 판타지와

신분적인 부분, 여성의 지위 등

여러 부분을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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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선생님의 칼럼

 

이게 참..

진짜 중국 여행을 다니거나

뭘 하다보면

 

혼용해서 써서

정말 헷갈립니다.

 

우리 김성민 선생님이

정리를 해놨다고 하는데,

 

한 번 같이 살펴볼까요?!

 

이제 경제적으로 한중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밀접한 경제대상국이 되고 말았다.

달러나 엔화를 능가하는 위안화의 공세에도 필자의 주위에 많은 사람이 실수를 하는 대목이 있다. 중국의 화폐단위를 물어보면 그 한자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중국의 화폐단위는 우리나라와 같은 원()이다. 이를 중국어로 발음하면 yuan. 현지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면위엔이 되겠지만 제대로 된 중국어 표기방안이 없는 터라위안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이 화폐단위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의 화폐단위를 나타내는 한자는이 아니라이 맞다. 모든 중국 화폐에 분명히이라고 적혀있다.

 

이 런민삐(人民幣)라고 불리는 중국의 화폐는 RMB 혹은 세계시장에서는 CNY 로 표기되는데 문제는 우리가 달러를 $, 우리나라 화폐단위를 ₩, 일본 엔화를 ¥로 표시하듯 화폐단위 표시 기호가 필요하게 되었다.

 

발음상 위안화는 ¥가 적당하겠지만 일찍이 세계 환율시장에서 일본이 이를 선점한지라 사용할 수가 없는고로 중국다운 한자를 이용한 표시기호로 같은 발음의 원()자로 표기하게 되었다. 비록 한자이지만 여타 화폐단위의 기호와 어딘지 모를 동질성이 느껴지고 해서 무난히 사용되어오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한국사람이 중국의 화폐단위가 기호로 등장한 원래 화폐단위로 오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는 서구권 문화에서는 여전히 요상한 기호로만 보였는지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자 경제초대국으로 성장하는 중국이 과감하게 일본이 선점하고 있는 ¥를 자국화폐단위 기호에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 환율시장에서 일본의 엔화와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지 인지도 헷갈리지만 발음은 같아 별 무리가 없겠다 싶은데도 실제 언어를 말할 때는 중국인들은 화폐단위를 위안이라고 하지 않고 고대에서 사용해오던 방식으로 콰이()를 사용하니 표기와 실생활에서의 용어는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폐에 적혀있기로는 100이라 되어있고, 글로 쓸 때는 100이라 쓰고, 말을 할 때는 100콰이()라고 하는데, 상품에 붙어있는 가격표는 100¥로 표기되어있는 복잡성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영어의 cent처럼 전 단위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1원은 100전이라 10진법으로 나가다 갑자기 100진법으로 둔갑을 하니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상당히 힘든 단위가 되었다. 그래서 물건 가격표에 100원을 100.00¥라고 표기한 뒤의 두 자리는 전 단위가 된다. 이 전 단위 또한 복잡해서 10전 단위를 지아오()이라 적어놓고 말할 때는 마오()라고 하며 단 단위인 전 단위를 펀()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머리가 깨질 단계에 접어들지만, 중국의 갑작스러운 급속경제발전으로 불과 몇 년 사이 전 단위는 거의 사라지고 우리나라 1원짜리 만큼이나 역사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기껏해야 쇼핑을 하며 따로 지급하는 봉투 가격이나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요금으로 50전에 해당하는 5마오가 가끔 사용될 뿐이다. 앞으로 몇 년이면 이마저도 보기 힘들어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태환권이라 불리는 외화와 바꾼 화폐가 따로 있었지만, 자유경제체제의 도입으로 이도 사라진 지 오래니 중국과 자주 왕래하는 사람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간단한 중국어 조금 익혀 중국여행을 가 중국어를 구사하며 쇼핑을 해보려고 상점에서 중국어로 뚜오사오치엔? 이라며 가격을 물어보면 어이없게도 한국말로 답변이 날아오던지 가격을 찍은 계산기를 들이밀 정도로 경제문제에 있어서 중국은 최고의 교역대상국이 되었다. 결국 익혀놓은 몇 마디 중국어는 차라리 명동에 가서 쓰는 게 더 편한 세상이니 말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 조선일보>



저도 원래 처음엔

이 맞는 표현인 줄

알았었는데,

 

김쌤 강의를 통해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현재 중국어세상에서 인강으로 있는

김성민의 중국어 X-파일(초급)편에

중국의 화폐에 대한 강의가 있는데요.

 

여행 가기 전에 몇번을 봤는지 몰라요..

 

특히 자잘한 단위가

헷갈리는게 넘나 많아서ㅠ

 

중국 사업을 하든

여행을 하든

 

가장 중요한 건 화폐 문제겠죠?!

 

이번 칼럼은 꼭!!

즐겨찾기 해놓고 자주 보시길 바래요!

 

암튼 오늘은 여기까지 하구요!

모두 담주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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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선생님의 칼럼

 

귀성길

이라는 단어는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걱정도 되는 단어입니다.

 

명절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모이는

민족 대명절은 참으로 반갑지만,


모두가 이동하는 귀성길은

정말 한편으론 교통체증으로

굉장히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5천만 인구의 한국이 이럴진데,

13억이 넘는 중국은?!

 

관련해서 김쌤이 알려주는

중국문화,


한 번

같이 확인헤볼까요?

 

중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 문화권이라 명절이 비슷하기도 하다. 전통적인 5대 명절을 꼽으라면 새해의 시작인 설날에 해당하는 춘제한자로는 춘절(春節)-, 대보름인 원소절(元宵節), 멱라강에 몸을 던져 죽은 굴원을 기리며 종즈를 만들어 먹는 음력 5월 초닷새 단오절(端午節), 우리네 한가위인 월병을 먹는 것으로 유명한 중추절(仲秋節), 음력 9월 초아흐레 양수 중의 제일 센 양이 두 개 겹쳤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중양절(重陽節)은 수유나무를 머리에 꽂고 액을 피하며 국화를 감상한다. 이 중양절 하루 간의 이야기로 만든 영화가 <황후화>이다.

 

그런데 현대적 의미로 명절이란 일반 노동자들에게는 역시 얼마나 쉬느냐가 관건이라 법정 공휴일이 가장 긴 춘제와 5 1일 노동절, 10 1일 국경절이 더 반겨지는 명절이 되었다. 법정 공휴일이 사흘이라고 해도 지키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기업이나 기관도 실제로는 상당한 휴일을 더 주고 있기에 중국과 사업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이 기간에는 연락에도 상당히 애를 먹기도 한다.

 

전통 명절이던 현대적 의미의 명절이던 춘제는 양쪽에서 최고 순위를 지키고 있는데, 실제로는 1주일 이상의 휴일을 가지는 곳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중국인의 사고방식 속에는 대보름까지 보름은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존재할 정도다. 그래서 보름 정도는 국가 기능이 마비된다고까지 말하는 것이다. 귀성 행렬을 실감 나게 볼 수 있는 것이 이 춘제이기도 한데, 올해 예상으로 28억 명의 이동이 있을 거라고 하니 총인구의 두 배가량의 이동이라는 말이다. 중국어로 설날 귀성행사를 '춘윈(春運)' 이라고 하는데, 가히 전쟁이라는 표현을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부분이다

 

손에 손에 산더미 같은 짐을 들고 지고 메고 가족을 데리고 가는 모습은 마치 피난길의 그것을 방불케 한다.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열차표를 사기란 하늘의 별 따기요, 표를 구하려면 춘제 전 일 이주를 다시 허비해 가며 노숙을 해야 구할까 말까다. 오죽했으면 열차 매표소 여직원이 최고의 며느릿감이라는 말이 기정화 되었을까.

 

중국의 열차는 크게 네 가지로 좌석이 구분되는데 2층 침대가 두 개 있고 문이 달린 4인실 롼우오(軟臥), 복도에 늘어선 3층 침대로 채워진 잉우오(硬臥), 우리네 열차같이 좌석으로 된 롼쭈오(軟座), 입석 칸을 겸한 잉쭈오(硬座) .

고달픈 서민 노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 잉쭈오는 표를 구했다 하더라도 못 탈 수도 있는 희한한 열차다. 개찰과 동시에 그 무거운 짐들을 들고 달려 열차 앞에 도착하면 일단 짐부터 차창으로 던져 넣고 올라탐이 기본이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이 몰리는 승차문 보다는 차창으로 올라타지만…. 평상시에는 열차승무원과 공안들이 창으로 올라오는 승객을 몽둥이로 밀어내지만 춘제만은 어쩔 수 없는 듯 차창으로 승객들을 밀어 올려 도와주기까지 한다. 그나마 요즘은 법이 강화되어 열차 지붕에 올라가는 사람은 볼 수가 없게 되었지만 1990년대만 해도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열차에 올라타도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공간 속에서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고향까지 공중부양으로 가야만 한다. 베이징에서 광저우까지 40여 시간을 가는 것은 그나마 가까운 거리라 하니...

 

늘어난 자동차로 인해 자가용 귀성객도 엄청나게 늘었는데 도대체 차가 얼마나 늘었는지 도로도 주차장이 되는 건 매한가지라, 시내의 왕복 24차선 도로가 막히는 것을 보면 어안이 벙벙하다.

요즘은 오토바이를 이용한 귀성객이 늘어나고 있는데 편해는 보이지만 산더미 같은 짐을 싣고 가족들을 태우고 멀리는 10여 일 간의 장정길에 오름이 결코 편할 리가 없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고향에 도착하면 오죽 기쁘랴. 인지상정이라고 보름 정도 고향의 따스함을 맛보고 나면 다시금 그 전장과도 같은 일자리로 복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고향에서 농사나 지으며 편히 함께 살자는 말 한마디라도 듣게 되면 여지없이 그로기 상태가 되어 휴일 후 복귀율이 떨어지게 된다.

이를 춘제 이직이라고 하는데, 춘제 기간이 끝나도 미복귀 인원들로 인한 일손이 모자라 당분간은 제대로 된 생산이 힘들다 하여 중국과 사업하는 사람들도 춘절 기간을 전후해서는 물건 주문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춘윈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의 설날 귀성길은 나들이 정도로 웃어넘겨도 될 것 같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 조선일보

 


매표소 직원이

최고의 며느릿감

 

이라는 말이 정말 확!!

비유가 와닿네요.

 

중국의 귀성길은

매번 뉴스에서 보여지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물론 예전보다는 더욱

질서정연해 졌겠지만 서도요!!

 

한 땐 창문이 더욱 선호되었다던

중국 귀성길,

 

오토바이 족은 현재도

북경 출퇴근길에서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

 

보름정도 쉬는 걸 당연시 하는

연휴는 정말 부럽지만,

저렇게 힘들게 가는 건 쫌

 

그렇네요 ㅎㅎ

 

암튼 오늘은 여기까지 하구요!

모두 담주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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